[길 위에는] 고양이꽃 사람꽃, 캣블러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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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는] 고양이꽃 사람꽃, 캣블러섬
작성일2년전

본문


길 위에는 고양이가 있고, 사람이 있다 

고양이꽃 사람꽃, 캣블러섬

 

눈이 소담스레 떨어지던 날이었다. 추운 날씨에 인적마저 끊겨 하얗고 두터운 카펫이 집 앞 골목에 깔린 그 밤, 주영 씨는 문득 고양이가 걱정되었다. 회사 앞에서 봤던 그 고양이처럼 여기에도 고양이가 있을까? 무심한 줄도 몰랐던 그 질문에 답한 것은 대문을 나섰을 때 새하얀 카펫 위에 빼곡하게 흩어져 있는 고양이의 발자국이었다. 

 

소리마저 자는 깊은 밤, 주영 씨는 사료 한 봉지와 물 한 그릇을 들고 고양이의 발자국을 좇아 전봇대 밑으로 가서 눈을 파고 밥을 놓았다. 그렇게 이 춥고 먼 길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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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며 흔들리며 주저하며

 

처음부터 고양이가 주영 씨의 마음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낮 밤 없이 일하는 디자이너이자 4마리 강아지의 반려인으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주영 씨에게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 생물이었고, 좋아하기보다는 거북한 쪽에 가까웠다.  

 

주영 씨의 삶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어머니의 한 마디였다. “주영아, 얘 꼬리 좀 봐! 이상해!” 때때로 구운 생선을 주곤 했다는 그 고양이의 꼬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피부와 털이 벗겨지고 벌겋게 생살이 드러나 있었다. 고양이 키우는 동료가 보호소라는 데가 있다는 걸 알려주었지만, 안락사가 시행되는 곳이란 말에 차마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주영 씨의 삶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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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고양이 검비)

 

 

사랑 많고 활발하던 어머니가 긴 병원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보름이면 될 거라던 입원이 몇 개월째 이어졌다. 주중은 회사 일, 주말은 병간호로 주영 씨의 생활이 가득 찼다. 그 빼곡한 삶의 틈바구니에 꼬리가 상해가던 고양이 검비가 작게 끼어 있었다.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설 때면, 문 앞에 여전히 너덜거리는 꼬리를 한 검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주영 씨는 혹시라도 동네 사람들이 뭐라 할까 검비에게 싫은 소리를 하면서도 집 뒤 으슥한 곳으로 가 밥을 줬다. 

 

아플 것이 분명한데도, 주영 씨는 그 녀석까지 짊어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춤거리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걸 아는 그 일을 하기 위해 한 발을 더 떼는 데 수 개월이 걸렸다. 누군가 대신해 주지도, 마법처럼 검비의 꼬리가 낫는 일도 없었다. 직접 포획해서 병원에 데려가 맡기고 돌봐서 입양처를 알아보는 일은 주영 씨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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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고양이들은 어떻게 살까?

 

검비를 시작으로 그녀의 마음속에 터를 잡은 고양이들은 도무지 떠나지를 않았다. 밥을 먹으면 쓰레기봉지를 찢어 배 채울 것을 찾던 고양이가 떠올랐고, 날이 추워 코트를 입고 부츠를 신을 때면 언 땅을 연약한 젤리로 딛고 있을 고양이가 생각났다. 날이 더워져 아스팔트 열기가 후끈할 때면, 고양이들은 이 더위를 피해 어디서 쉴까 걱정스러웠다. 

 

그럴 법도 한 것이 그간 보이지도 않던 고양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기라도 한 듯, 눈을 돌리면 고양이가 보였다. 임신묘부터 외상을 입은 고양이, 범백이나 구내염, 허피스, 칼리시 같은 병이 있는 고양이까지. 주영 씨 역시 재정적․육체적․정신적으로 두려웠다. 하지만 그에 고개를 숙이거나 돌아서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며 10년을 묵묵히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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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 씨의 고양이밥 준비는 새벽 2시쯤 닭안심살을 삶는 것으로 시작된다. 요즘 주영 씨를 가장 마음 쓰게 하는 건 16마리로 늘어난 구내염 환묘들이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뿐이었지만, 이제는 한 골목에서만 11마리까지 늘어났다. 아파서인지 입도 까다로워서, 믹서로 갈면 먹질 않고 덩어리가 크면 아파서 먹지를 못 한다. 이리저리 궁리를 하고 맞춰보다 찾은 것이 절구로 찧는 것이다. 하룻밤에만 1.5킬로그램을 만들어 들고 나서는데, 구내염 고양이들을 챙겨주고 나면 나머지 밥자리 아이들은 조금 입이나 대어볼까 싶을 정도로 부족하다. 

 

약 먹일 용으로 챙기는 주식캔, 닭안심살, 사료까지 다 챙겨들고 4시부터 밥을 주기 시작해서, 만나는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한 뒤 장소를 정리하고 다시 이동하는 걸 3시간 넘게 반복한다. 이 모든 과정이 ‘레아’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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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네, 산과 들, 사람 사이로

 

주영 씨가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길고양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캣블러섬이라는 존재가 소개되어 있다. 캣블러섬은 주영 씨가 몇 년 전부터 시작한 핸드페인팅 제품 브랜드이다. 식기를 좋아하는 어머니에게 선물할 생각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고, 블로그에 올렸던 것이 시작이었다. 다양한 고양이 제품들이 있지만, 캣블러섬은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주영 씨가 길생명들을 “냥꽃”과 “멍꽃”으로 부르는 데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새벽이면 주영 씨는 수많은 길고양이들이 밥과 물을 찾아 오갔을 그 길 위에 선다. 그 마음 그대로 주영 씨는 작업대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고양이와 꽃을 그린다. 어느 따뜻한 집 식탁 위에서, 창가에서, 벽에서, 바닥에서 고양이가 꽃처럼 피어나길, 그 바람을 담은 것이 캣블러섬이다. 철마다 꽃이 피고 지듯, 길 위의 생명들도 피었다 질 것이다. 부디 그 삶이 고단하기보다는 잠시간이라도 즐겁고 안온한 것이기를. 주영 씨는 그 바람을 담아 길을 나설 것이고 붓을 기물에 얹을 것이다. 부디 모두 평온하기를. 

 


더 가까이서 만나는 캣블러섬 이야기 

catblossom.co.kr

 


CREDIT

김바다 (작가 | <이 많은 고양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저자 ) 

사진 김주영 (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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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의 의견   총 1
 
이새벽에 어린첫발정으로 잠못이루는 셋째때문에 이글을 보고 청승맞게 울고 말았네요 어떤면에선 같은듯 하다가도 대단하신  새벽조공...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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