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개, 그 회색지대의 동물들


 

칼럼
시골개, 그 회색지대의 동물들
조회 13374   2년전
이형주 동물보호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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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개의 팔자는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의 주인공 에드워드와 톰처럼 극과 극이다. 반려동물로 집에서 길러지는 개와 식용으로 개를 사육하는 농장에서 태어난 개의 처지만 봐도 그렇다. 

 

반려견과 식용견은 사람이 용도에 따라 부여한 이름이지만, 만일 그 경계가 존재한다면 그 사이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동물들이 있다. 바로 밖에서 길러지는 ‘마당개’다. 공장이나 비닐하우스, 공사현장 한 구석이나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의 주택에서는 1미터 남짓한 줄에 묶여서 길러지는 개를 쉽게 볼 수 있다. 주로 백구, 진돗개 같은 대형견이거나 몸집이 좀 더 작은 발바리 종이다.  

 

단순히 ‘짧은 줄에 묶여 살아서 안 됐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집 밖에서 길러지는 동물들이 겪는 고통은 생각보다 상당하다. 탐색하기를 좋아하고 사람이나 다른 동물과 교류하고 싶어 하는 사회적 동물인 개가 혼자 묶여 길러지면서 겪는 외로움과 지루함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되며, 공격성을 보이거나 정형행동을 보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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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무덥고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가 찾아오는 우리나라의 기후는 동물이 바깥에 살기에 적절한 날씨가 아니다. 개는 털이 있어서 체온이 저절로 유지된다는 생각은 오해다. 개도 무더위에 노출되면 열사병에 걸리고, 심한 추위에서는 저체온증과 동상에 걸릴 수 있다. 또한 밖에서 기르면서 구충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모기를 매개로 하는 심장사상충에 감염되거나 혈액기생충을 매개하는 진드기 등에 쉽게 물려 생명을 잃을 위험도 높아진다. 

 

시야에서 멀어진 만큼 관심을 받지 못해 방치상태로 길러지기도 한다. 공장이나 밭, 가게처럼 사람이 주거하지 않는 곳에서 길러지는 개들은 연휴나 주말이면 굶기 일쑤다. 묶여있는 처지라 길고양이처럼 길거리에서 먹이를 구해볼 수도 없다. 밥을 주더라도 제대로 사료와 물을 공급하지 않고 잔반을 먹여서 키우는 경우도 많다. 염분이 많은 잔반을 먹으면 신장, 간 등 장기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실제로 현장에 나가보면 만성 장염에 시달리며 설사나 혈변을 보는 동물도 쉽게 볼 수 있다. 놀랍게도 밖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먹이면서 키우는 사람들 중에는 음식에 수분이 있기 때문에 물을 따로 공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도 충분한 물을 섭취하지 않으면 탈수증에 걸린다. 물이 있어도 오랫동안 갈아주지 않으면 녹조가 끼어서 건강을 해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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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통을 다 견뎌낸다 하더라도 마당개의 삶은 위태롭다. 주인을 보면 꼬리를 치며 반기는 모습은 영락없는 반려동물이지만, 요즘 같은 여름이면 한순간에 개장수나 장터에 팔려가는 식용동물 신세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도 밥을 주고 머리도 가끔 쓰다듬는 주인이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트럭에 실려가서 도살되면서 겪을 혼란과 공포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는 도심 지역에서 이렇게 방치상태로 길러지는 동물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견주들에게 올바른 반려동물 사육방법을 교육하는 ‘시골개, 1미터의 삶’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고통 받는 동물들을 전부 구조해오는 활동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먼저 동물에게 도움을 주려면 사람의 마음을 열어야 하는데, 단 하루 만에 되는 일이 아니다. 몇 달 동안 꾸준히 찾아가서 개들에게 물과 간식을 주면서 지역주민들과 얼굴을 익히고 신뢰를 쌓아야 한다. 

 

‘저렇게 방치하려면 개를 왜 키우냐’며 동물학대범처럼 취급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동물에게 일부러 고통을 주려는 의도를 갖고 동물을 방치하는 경우는 드물다. ‘개는 원래 그렇게 키우는 것’이라는 오래된 인식과 무관심이 원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난하기보다는 친절하게 개도 물이 필요하고, 비를 피할 집이 필요하고,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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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에는 대대적인 시골개 환경 개선에 나섰다. 집 없이 말뚝이나 리어카에 묶여 살던 개들에게는 개집을 놔주고, 목줄은 1미터 쇠사슬에서 3미터 길이의 가벼운 와이어줄로 교체했다. 줄에 걸려도 엎어지지 않도록 바닥이 넓적한 물과 사료 그릇을 제공하고, 짬밥 대신 먹일 사료도 선물하고, 집 주위에 널려있던 배설물도 깨끗하게 청소했다. 구충약을 먹이고 외부기생충 방지 목걸이도 걸어주었다. 처음 찾아갔을 때는 귀찮아하던 주민들도 이제는 물도 자주 갈아주고 사료도 줘야겠다며 오히려 미안해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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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이제 여름에 개 잡아먹으면 안 되겠네!” 주민 한 분이 농담 반, 불평 반인 어조로 던진 말에 활동가들도, 주민들도 같이 웃었다. 수십, 수백 년 동안의 관습이 쉽게 바뀌겠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큰 변화는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한 사람, 한 동네의 생각이 바뀌고, 그 이웃 마을이 바뀌고, 그런 마을이 모여서 시가 변화하고 나라가 변화하고 결국 시대의 ‘상식’이라는 것이 변화한다. 앞으로 십 년, 이십 년 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전에 동물을 그렇게 길렀었지’라고 회상하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현실로 만들려는 끝없는 시도가 곧 동물들에게는 한 줄기 희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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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소개

이형주 동물보호활동가
모든 동물이 고유한 습성을 유지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인 동물보호활동가. 동물복지 정책연구와 입법운동에 중점을 둔 비영리단체인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대표를 맡고 있다.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저자. 한국일보, 오마이뉴스, 허핑턴포스트, 월간비건 등의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반려인의 의견   총 1
SUZI  
우리나라의 반려견이 왕자와 거지처럼 나뉘는 현실이 매우슬프네요...그래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시골개들을 위해 힘써주시는모습이 매우 감동적입니다 후원할수있으면 하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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