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고양이
보닛에서 구조된 아기고양이
검지야, 이제 꽃길만 걷자
매년 겨울, ‘모닝 노크’ 캠페인이 실시된다. 자동차 엔진룸을 노크해 잠든 고양이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캠페인이다. 하지만 작은 고양이 검지의 사연을 듣고 나면 계절에 상관없이 모닝 노크의 습관은 언제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보닛에서 발견된 아기 고양이
플로리스트 윤희선 씨가 새끼 고양이의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듣게 된 건 저녁 7시쯤. 플라워 가든 뒤쪽 상가로 협의할 일이 생겨 나가던 길에 다급한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다. 근원지를 찾다가 주차된 차 속에서 나는 소리임을 발견했고 얼른 차주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차 안에 고양이가 있는 것 같아요. 좀 열어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전화 드리고 차주분과 함께 보닛을 열었는데 연로통 쪽에 고양이가 앉아 있더라구요. 기름때가 새카맣게 묻은 채로 두 눈 동그랗게 쳐다보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길에다 내려놨더니 곧장 찻길로 뛰어들어서 얼른 붙잡았어요. 로드킬 당할까봐. 얼떨결에 박스에 담긴 했는데 차주분도 데려가실 수 없다고 하고 다시 내려놓을 수도 없고… 참 난감한 순간이었지요.”
그녀의 품에 안겨 동물병원으로 직행한 아기 고양이의 건강상태는 양호했다. 그리고 곧 ‘검지’라는 이름을 얻었다. 솜털처럼 하얀 털 바탕에 꼭 검지로 찍은 것 마냥 검은 털이 나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일까.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검지의 등짝만 보고 있어도 절로 웃음이 터지고 만다고.
“기름때가 너무 묻어 있어서 목욕을 시킬 수밖에 없었는데, 구정물이 얼마나 나오던지… 고양이를 키워 본 적이 없어서 몰랐어요. 길고양이들의 삶이 얼마나 척박한지. 한 달 정도 밖에 안 된 아기 고양이에게 그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던 걸까요? 어미 고양이는 괜찮을까요? 아이를 키우는 같은 엄마의 입장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구요.”
처음엔 갈 곳 없는 녀석의 처지가 안타까워 데려온 검지. 하지만 식구들은 복덩이가 들어 온 것 같다며 모두가 반기고 있다. 그리고 검지는 현재 가족 내 서열 2위를 달리고 있다.
검지는 서열 업그레이드 중
“엄마인 제 밑으로 아이들이 있고 아빠가 서열 꼴찌였고 그 뒤로 검지가 있었는데, 금새 아빠를 제치고 올라서더라구요(웃음). 그러더니 한 달 만에 애들마저 제치고 가족 내 서열 2위 자리를 꿰찼어요. 사실 플라워 숍에서 자유고양이로 키울 생각이었어요. 밖에서 화단 정리를 하고 있으면 따라 나왔다가 차 소리에 놀라서 얼른 들어가는 걸 보면 멀리 갈 것 같지도 않고, 오가는 손님들이 귀여워해주시고, 또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숍에서 꽃을 만지며 생활하고 있어 함께 놀아줄 시간도 넉넉하고 딱이겠다 싶었지요. 때로는 출퇴근을 함께하는 정도로 함께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가족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검지를~”
가족들도 가족이었건만, 검지도 복을 꽤 타고 났다. 꽃집에서 가장 바쁜 시기 중 하나로 꼽는 5월에, 그것도 정신없이 바빴던 5월 15일을 마무리한 희선 씨가 한숨 돌릴 때 검지를 발견한 것이다.
“그 전에 발견되었으면 신경써줄 여유도 없었을 거예요. 어버이날, 스승의 날 같은 시즌엔 엄청나게 바쁘거든요. 딱 바쁜 거 끝내고 한숨 돌리려는 그날 저녁에 발견된 거죠. 어른들 말씀에 들어오는 생명은 내치는 거 아니라고 하시더라구요. 유기동물 데려간다는 곳 전화번호를 받긴 했지만 선뜻 걸지 못했어요. 키워야 되나? 보내야 되나? 엄청 갈등하면서도 내키지 않더라구요. 결국 딸에게 들켜서 집으로 입성했지요. 우리 검지.”
함께하는 즐거움보다 헤어지는 순간의 슬픔이 더 클 것만 같아 선뜻 반려동물을 맞이하지 못했던 그녀의 집에 약속된 듯 들어와 버린 아기 고양이. 군인이었던 엄마의 뒤를 이어 ROTC 학사장교를 준비 중인 대학생 딸이 제일 애지중지하며 케어 중이다. 오늘도 엄마 따라 잠시 꽃시장 드라이브 후 언니 품에 안겨 집으로 간 검지는 당분간 숍 출근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방학을 맞이한 언니와 놀기 바쁘기 때문.
골프공 따라다니면서 아빠마음까지 사로잡다
“털 알레르기 있는 남편이 반대하면 집에는 데려갈 수 없겠다 싶었는데, 검지가 아빠를 너무 좋아해요. 잠잘 때도 꼭 아빠 곁에 가서 자요. 그러니 아빠가 싫어할 수가 없는 거예요. 예쁜 짓도 너무 많이 하고요. 남편이 퇴근 후 골프 퍼팅 연습을 하는데 검지가 그걸 알더라구요. 그래서 아빠가 들어오면 먼저 퍼팅매트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공이 굴러가면 잡으려고 막 따라가요. 꼬리를 바짝 세우고 돌진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식구들이 다 같이 보면서 웃음이 터져요. 꼬맹이 때문에.”
사람도 고양이도 예쁨은 다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법이다. 태어난 지 한 달 조금 넘은 아기고양이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이별이 두려워 선뜻 용기내지 못했던 엄마도, 심하게 반대할 것만 같았던 아빠도, 너무 예뻐하는 언니 오빠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아버린 검지는 집안의 막내이자 외동묘로 사랑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더운 여름, 메론을 먹을 때 ‘한입 주세요~’라며 당차게 식구들 사이로 파고들면서.
CREDIT
글 박수현
사진 윤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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