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며 만나다 6화


 

I am 리포터 삶의 현장에서 만난 동물들
여행하며 만나다 6화
작성일3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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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며 만나다
능평리 사랑방으로 초대합니다

 

그런 집이 있다. 처음 갔을 때부터 편안하더니 가면 갈수록 내 집처럼 푸근한 곳. 그런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괜찮은 사람, 두 번 볼 땐 좋은 사람, 몇 번 더 보면 빠져들고 마는. 정현 언니가 그렇다. 그 날은 무언가 단단히 꼬여 지지리도 풀리지 않는 날이었다. 힘들게 한 섭외가 펑크 나고, 남자친구랑 싸우고, 모든 짜증을 애꿎은 부모님에게 푼 날.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다. 자괴감에 울먹울먹 하니 언니가 말했다. “커피 한 잔 하러 와.”

 

글 사진 박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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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별 거 있나요
경기도 오포읍 능평리. 정현 언니의 주소다. 경기도 광주로 넘어가는 태재고개 위에 위치한 집은 시골스러운 주소가 주는 이미지보다 의외로 서울에서 가깝다. 서울을 살짝 벗어났을 뿐인데 공기가 차다.

익숙하게 집으로 들어선다. 기분 좋게 퍼진 커피 향을 즐길 새도 없이 다섯 마리의 개들이 나를 덮친다. 유리, 짝짝, 가을, 보라, 아롱이다. 신혼 때부터 키운 슈나우저 유리와 유리의 딸 짝짝이를 제외하고는 다 업둥이들이다. 각기 다른 보호소 출신이지만 별 텃세 없이 서로를 받아들였다. 내가 들어서자 이내 유리와 짝짝이는 안방에 감금당한다. 첫 강아지다 보니 지나치게 오냐오냐한 탓에 낯선 이를 물어대기 때문. 그것도 아주 맹렬하게!


맛있는 커피와 샌드위치가 앞에 놓이니 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 씩씩하게 먹기 시작했다. 주제가 없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꼬인 것을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스멀스멀 솟구쳤다. 고맙다는 인사에 언니가 답했다.
“위로가 별 거 있니. 들어주고, 편이 되어주고. 우리가 개한테 위로를 느끼는 게 그런 거잖아. 내가 뭘 했든, 어떤 사람이든 항상 나만 바라보고, 함께 있어주니까. 난 저들만큼 못 들어주니까 샌드위치로 때우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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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이야기가 모여 오색 빛을 내기까지
친구의 개가 새끼를 낳았다. 그녀는, 한 마리 가져가라는 말에 얼떨결에 받아버렸다. 막 젖을 뗀 유리를 품에 안아들 때만 해도 이렇게 손이 많이 가고 큰 책임감이 필요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뭣 모르는 시절이라 교배를 시켜 새끼를 보았다. 그땐 다 그런 줄 알았다. 그중 가장 작고 약했던 짝짝이만 제외하고 다 지인에게 입양을 보냈다.


보라는 그 후 정현 언니가 유기견 세계에 들어오게 만든 장본인, 아니 장본견이다. 지인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하여 알아보던 중 우연히 접한 보라의 공고에 마음이 홀딱 뺏겼다. 이미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지라 남편에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는데 흔쾌히 이해해 주었다. 그때 “응”이라고 말한 것이 다섯 마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형부는 말한다.


째려보는 듯한 인상 때문에 ‘앙칼진 에미나이’라는 별명을 가진 보라는 1.7kg의 작은 말티즈다. 당시 몸의 절반만 한 커다란 유선종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7살이라는 추정 나이는 이미 사랑에 빠진 언니에게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수술 자국이 사람 손 한 뼘이 넘는 큰 수술을 마친 보라는 지극정성 보살핌 속에 활기를 되찾고 이 집의 미모를 담당하고 있다.


보라와 달리 4kg의 덩치가 있는 말티즈 가을이. 말티즈 특유의 까칠함이 전혀 없고 속 한 번 썩인 적 없는 효녀지만 당시 입양신청이 없었다. 임시보호 후 6개월쯤 지나자 드디어 가을이에게도 입양신청이 들어왔다.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는 집으로 조건은 괜찮아 보였다. 눈물로 이별을 준비하던 남편이 갑자기 고양이와 개를 함께 키우게 할 수 없다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능평리에 또 하나의 가족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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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마리 이상은 절대 안 된다던 남편, 그러나 어디 삶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던가. 아롱이는 부부에게 순둥순둥한 시추의 매력을 제대로 선보였다. 개농장 출신으로 일생 동안 새끼만 밴,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가졌으면서도 모든 게 다 좋다는 초긍정녀에게 두 사람은 홀딱 반했다.


아롱이는 현재 임시보호 중으로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직장이 있는 두 사람이 돌볼 수 있는 개의 수는 다섯 마리로 한정하고, 그중 한 자리는 임시보호로 열어두기로 부부가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매력이 가득한 아가씨 아롱이의 가족이 되어주세요. 짖음도 없고, 배변도 완벽하고, 아픈 데 하나 없이 건강해요. 사람과 개 모두에게 다정하며, 무한한 애정을 줄 줄 아는 아롱이의 평생 엄마 얼른 오세요. 로또 맞으신 거예요.”
활기차게 말하면서도 다가올 이별을 생각만 해도 슬픈지 눈가가 촉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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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놀러오세요
“우리 집에 가자.” 사람을 좋아해 어릴 때부터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는 언니. 누군가 아롱이 보고 싶다고 댓글을 달면 언제든지 보러 오라고 하고, 그런 식으로 성사된 모임만 십여 차례다. 몇 번 모임 후 우린 자연스레 ‘능평리에서 보아요’라고 인사를 하게 되었다. 서울, 경기권은 물론 심지어 부산에 사는 회원도 이곳을 방문했다. 신경 쓸 것도 많고 뒷정리도 만만치 않을 텐데 언니는 늘 놀러오라고 말한다.


“난 오히려 그렇게 부대끼는 게 삶의 에너지로 장착돼. 좋은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면서 그 기운을 받아 더 힘이 나. 그게 꼭 사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개들에게도 향하는 거지. 마음이 통하고, 위로받고. 그리고 얘네는 늘 좋은 에너지로 똘똘 뭉쳐 있잖아. 얼마나 멋지니.”


작은 정원으로 향하는 문을 열면 이어져 있는 나무 데크는 이 집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다. 햇살 좋은 날 커피를 마시며 노곤노곤 볕을 쬐는 개들을 지켜보는 것은 몹시 행복한 일이다. 매서운 찬바람이 야속한 시기지만 눈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데크에 눈이 쌓이면 다섯 마리의 아이들과 깡충깡충 술래잡기를 하고 눈사람을 만들 것이다.


“눈 오면 다시 놀러올게.”
“커피 마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집에 돌아갈 때 언니가 말했다. 마감에 치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언니의 커피가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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