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는 고양이가 있고, 사람이 있다
조심스러운 돌봄, 여의도 캣맘
갑자기 들이닥쳐 온 세상을 제압해버리는 것이 겨울이라면, 봄은 조심스럽고 아련하다. 살금살금 온 듯 만 듯 잠시 앉았다가 금세 여름에 자리를 내어준다. 존재감조차 여린 봄이지만, 그렇게 와서 단단히 굳은 땅과 식물의 어깨를 토닥여 한 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렇게 활동하고 있는 캣맘 둘을 비 오는 어느 봄날에 만났다.
엄마가 엄마에게
사람이 아닌 존재에게 길이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0년째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는 강경자 씨 역시 그랬다. 길은 집을 나서면 있는 곳이자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의 일부일 뿐, 굳이 살피거나 돌볼 필요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 고양이가 그 생각을 바꾸어놓았다.
몸은 물론이고 눈빛까지 바싹 마른 고양이 하나. 1941년생인 경자 씨는 전 국토가 화마에 휩싸이는 것을 보았고, 그로 인한 재난과 극심한 기아를 경험한 세대이다. 어떤 생명이든 허기의 고통에 시달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동물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관련 지식도 없었던 그녀는 급한 대로 소시지 하나를 던져 주었다.
고양이는 그것을 물고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그러려니 지나칠 수도 있었건만 배가 고픈데 바로 먹지 않고 어딜 가나 궁금해 따라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고양이가 아닌 어미를 보게 되었다. 저도 분명 창자가 끊어질 듯 배가 고플 텐데, 새끼에게 그것을 양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성한 자녀가 있고 그 자녀가 낳은 자녀까지 보아온 경자 씨였다. 엄마란 어떤 것인지 너무도 잘 알기에 동료 생명이자 엄마라는 책임을 같이 지고 있는 동업자인 그 고양이를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 없었다.
그 고양이 가족과의 조우에서 경자 씨는 길이 어떤 생명에게는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는 아파트의 낮은 수풀 속에서, 운동 삼아 다니는 공원의 자전거포에서, 알아봐주는 이 없고 찾는 이 없어도 저 알아서 피었다 지는 들꽃처럼 눈길 주는 사람 없어도 스스로 가지를 뻗고 잎을 틔우는 나무처럼 곳곳에는 길고양이가 있었다.
그들의 삶 속으로
한동안은 길고양이를 챙기는 것이 그저 즐거웠다.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면서 밥과 물을 주고 온 밤이면 배곯고 목말라 힘들 생명은 없겠거니 하는 마음에 편히 잠들 수 있었다. 그러나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안녕.”을 속삭이고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졌던 고양이가 싸늘하게 식은 채 발견되기 시작했다. 길고양이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려 했던 경자 씨가 달라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 결과로 TNR이 된 한 무리의 길고양이와 경자 씨 집에 둥지를 튼 두 고양이가 남았다.
“이 아이들을 마지막까지 돌보겠다고 저 위에 계신 분께 약속했어요.” 경자 씨의 말이다. 그녀는 고양이의 삶에 개입하면서 신과 약속을 할 정도의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그때만 해도 얘들이 이렇게 오래 살지 몰랐죠. 내가 먼저 갈지도 모르겠어요.”라는 말로 바꾸어놓았지만, 그녀가 힘주어 말했던 그 약속의 무게는 고스란히 마음에 남았다. 공원 고양이 중에는 올해로 8살이 되는 친구도 있는데, 언뜻 보기에는 2살 남짓으로 착각할 정도로 건강하고 어려 보였다. 경자 씨와 길고양이 간의 건강 경쟁이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면 했다.
이어받는 사람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생명을 키우는 것은 그만큼 여럿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동네의 길고양이 역시 다르지 않다. 오히려 같은 지붕 아래 살지 않기에 공동체의 도움은 더욱 필요하다. 경자 씨와 함께 여의도 공원의 고양이를 돌보는 영희 씨가 그 공동체의 일원 중 하나이다. 그녀는 공원 인근에서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자 10대 자녀를 둔 엄마이면서 2년차 캣맘이다.
캣맘 일은 그녀에게 신선한 경험인 듯 보였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관심사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예전에는 쇼핑을 해도 옷이나 가방, 화장품에 신경이 쓰였는데, 이제는 고양이 사료나 용품 세일에 촉각을 곤두세운다고, 예전에는 식사 후에 동료와 카페에 갔지만 이제는 공원을 돌며 고양이를 챙기게 되어 건강도 얻고 커피 값도 덜 들게 되었다고, 공원 고양이를 돌보면서 집 주변의 고양이에게도 조금씩 밥을 주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자녀들과 대화도 더 자주하게 되었고, 아이들의 감성이나 시선이 자연스럽게 공존이나 약자, 자연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얻은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인터뷰 중에 영희 씨는 여러 번 “강경자 여사님처럼 먼저 활동해주신 분들이 많은 것을 마련해두셔서 쉽게 활동하고 있는 거죠.”라고 말했다. 아무리 쉬워졌다 한들, 혐오나 배척이 당연한 권리인 줄 아는 사람이 많은 이 시대에 길고양이 밥 주는 일이 쉬울 리 없겠지만, 영희 씨의 말처럼 이만큼까지 온 것은 캣맘들이 오랫동안 길고 지난하게 노력해온 덕분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다시 봄
경자 씨가 지나온 10년의 캣맘 생활에는 따뜻했던 봄과 화려했던 여름, 풍성했던 가을, 춥고 매서웠던 겨울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제 막 태어나 세상의 다양한 맛과 즐거움을 경험하며 여름으로 나아가고 있는 어린 캣맘들과 함께 다시 봄을 맞고 있다.
길고양이가 사람에게 그렇듯, 사람도 그들의 삶에 깊이 개입하지 않고 많이 간섭하지 않으면서 곁에 있을 것이라고 경험 많은 엄마 캣맘과 이제 걷기 시작한 어린 캣맘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말하고 있다.
순환하는 세상의 이치에 따라 이들에게도 언젠가 혹독한 시간이 오겠지만, 그때에도 다시 올 봄을 생각하며 길고양이와의 동행을 이어나가주길, 그리고 그때에는 또 다른 어린 캣맘이 곁에서 함께 걷고 있기를 희망한다.
CREDIT
글 김바다 (작가 | <이 많은 고양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저자 )
사진 여의도 길고양이 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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