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떠난 너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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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난 너에게 보내는 편지
조회2,837회   댓글0건   작성일4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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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난 너에게 보내는 편지
영화 <구구는 고양이다>

 

사람보다 빠른 속도로 생을 살아가는 고양이. 함께하던 고양이가 먼저 생을 마감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늘은 먼저 떠난 고양이에게 생전에 잘 해주지 못했던 아쉬움,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을 편지로 적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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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는 잘 지내니, 사바?

네가 떠난 지도 벌써 일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네. 한 바퀴 돌아 벌써 새로운 가을이 시작되려 하고 있어. 고양이는 인간의 세 배 속도로 나이를 먹는다지? 그래도 15년이나 함께했던 네가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뜰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어. 그래서인지 여태까지도 아직 너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는 것 같아. 요즘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해. 이 불민한 집사와 함께할 때, 너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잡지에 실릴 만화의 마감 시즌이면 마무리 짓는 데만 바빠 너를 챙길 새도 없었지. 그때 넌 얼마나 외로웠을까. 작업실 식구들까지 포함해 사람이 다섯 명이나 있는 집 안에서 마감 때면 너를 바라봐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니 말이야. 사람이 많지나 않았으면 어쩜 덜 외로웠을지도 모를 텐데. 아무래도 너에게 잘못했던 일이 너무 많은 것 같구나.

마감이 끝나고 작업실 식구들이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왠지 모를 공허함이 찾아오곤 했었어. 사람들의 체온이 사라진 텅 빈 집. 그 때 네가 있어 주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너는 아마 모를 거야. 목욕 후 푹신한 타올 위에 올라앉아 있는 걸 좋아하던 너, 정어리 통조림을 좋아하던 너, 거울 위에 엎드려 잠을 자는 것을 좋아하는 나르시시스트였던 너……. 그런 추억들이 남아 있어서인지 네가 떠난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지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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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고양이를 집에 들였어

이름은 ‘구구’. 작업실 식구들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길래, 재미있겠다 싶어 의미를 맞추는 사람에게 우리 동네의 명물 멘치까스(돈까스) 1년 치를 사주겠다고 했어. 재미있겠지? 그런데 다들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 같아. 단순하게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을. 어때, 사바 너도 한 번 맞춰 보겠니?

사실 구구와 함께 하기까지 많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어. 새로운 고양이를 집에 들이는 것은 너를 배신하는 일이 아닐까, 하늘에서 네가 섭섭해 하지는 않을까, 너의 죽음을 잊어버리고 역시 먼저 세상을 떠날 게 분명한 고양이를 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나 봐. 내 마음 속 커다란 너의 빈자리, 그 자리를 채울 존재가 필요했던 것 같아. 그렇게 외로우면 남자를 만나라고 할지도 모르겠네. 우리 엄마도 그러더라, 좋아하는 사람이 있거든 솔직히 좋아한다고 말하라고. 하긴, 내 나이가 결혼적령기로부터 한참 지난 나이이긴 하지.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게 일반적인 일이겠지. 그리고 동물도 제 짝을 만나 새끼를 낳는 게 타고 난 본성일 테고. 사바, 너 혹시 그거 아니? 네 중성화수술을 하기 전에 내가 얼마나 고민했는지 말이야. 내가 편하자고 네가 가지고 있는 본성을 내 마음대로 막아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수도 없이 고민했었어. 나도 알아, 수술을 하지 않으면 네가 낳을 새끼 고양이들을 내가 전부 책임질 수도 없고 또 네가 무서운 병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는 거. 하지만 그래도 네가 태어난 이유가 뭔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중성화수술을 마친 뒤 너에게 많이 미안했어. 구구 역시도 중성화수술을 하려니 또 같은 고민이 들더구나. 그래도 구구와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던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                            

얼마 전에는 새 작품을 발표했어

갑자기 나이를 빨리 먹기 시작하는 고교 3년생 여자아이의 이야기야. 그렇게 급속도로 늙어 가는 병을 조로증(早老症), 엘레나 증후군이라고 한다더구나.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작품 구상의 계기는 바로 너였어, 사바. 우리 사람보다 세 배 이상의 속도로 살아가는, 세 배 속도로 늙어 가는 네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한 번 추측해 보고 싶었거든. 작품을 준비하면서 작업실 사람들과 함께 노인되기체험이라는 것도 받았지 뭐니. 눈은 침침하고 귀는 잘 들리지도 않고, 몸은 무거워 움직이기도 힘든데다가 허리까지 구부정하게 굽어 있으니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그런데 있잖아, 체험을 하면서 내가 느낀 게 뭔 줄 아니? 그렇게 힘들 때 곁에 대화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가, 하는 거였어. 친구라는 존재의 필요성이랄까? 사바 너에게 나는 과연 어떤 친구였을지 궁금하다. 나에게 너는 정말로 좋은 친구이자 훌륭한 동반자였는데 너에게는 어땠을지. 받기만 하고 해준 게 아무 것도 없는 것만 같아서 미안해. 멀리 떠나기 전에 더 잘해 줬어야 하는 건데. 또 후회하지 않도록 구구에게는 모든 마음을 쏟으려 노력하고 있어. 사바, 네 덕분이야.

그래서일까? 돌이켜 보니 사바 너와 나눈 것만큼 구구와도 많은 추억을 만든 것 같아. 사라진 구구를 찾으러 헤매다 공원에서 세이지 씨라는 사람과 만난 일도 그래. 이상한 일이지. 나보다 나이는 어린데(한 열 살쯤?) 세이지 씨를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지 않겠니. 한참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병원을 이어받으려 인턴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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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엔 사바 네가 꿈에 나왔어

꿈에서 깨자마자 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고는 지금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어. 사실 지금 여기는 세이지 씨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의 병실이야. 큰 수술을 받았거든. 세이지 씨에게 진료를 받고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됐지 뭐니. 태어나 병원 신세 한 번 지어 보지 않았던 내가 그렇게나 큰 병에 걸릴 줄 누가 알았겠어?

있잖아 사바, 네가 꿈에 나온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이야. 요즘 그만큼 더 네가 그리웠나 봐. 어쩌면 사바 네가 나를 부른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 꿈에서는 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 너로부터 듣던 예전의 이야기들, 과거의 추억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너는 내게 참 소중한 존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소중한 존재가 내 곁에 있었고 지금도 따뜻한 기억으로 내 안에 남아 있다는 생각. 그 생각이 힘겨운 항암 치료로 한없이 무너져 가고만 있던 나에게 정말로 큰 힘과 위로가 되어 줬어. 고마워 사바, 고마워.

이제 곧 오후 검진 시간이네. 이쯤에서 편지를 마무리 지어야겠다. 아, 사바 너에게만 먼저 알려줄게. 구구의 이름 뜻이 무엇인지. 구구의 의미는 ‘Good Good'이야. 참 단순하지? 고양이 구구는 굿 굿. 사바 너 그리고 구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존재인지, 나에게 얼마나 좋은 존재인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란다. 좋은 고양이 사바, 고마운 고양이 사바. 그럼 나중에 만나자. 

이대훈

일러스트레이션 조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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