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끌린 곳에 노랑 고양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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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끌린 곳에 노랑 고양이가 있었다
조회1,387회   댓글0건   작성일1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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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끌린 곳에 노랑 고양이가 있었다
나비에게서 배우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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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끌린 곳에 노랑 고양이가 있었다


책방을 시작할 때 고려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위치 선정은 특히나 신중함을 필요로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유동 인구가 많은 중심가에 있는 상가로 대중교통으로의 접근이 편하고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며 깨끗한 화장실까지 겸하고 있으면 금상첨화였다. 하지만 이런 조건에 맞는 몇 군데를 탐방 후 내가 마주친 현실은 도저히 작은 책방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월세라는 벽이었다.

 

10평 남짓한 공간을 사용하는 데 백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을 매달 내는 것도 부담이었고 보증금보다 높은 권리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솔직히 돈도, 그 돈을 낼 자신감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월세가 낮은 곳을 찾아 동네 안쪽으로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지만 딱히 마음이 끌리는 곳은 없었다. 그곳들은 나에게 그냥 낯선 동네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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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동네를 찾아갔고 낡은 주공아파트 대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것을 제외하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중학교도 그대로였고 주변 학교들도 그대로였다. 유동 인구가 많은 곳도 아니고, 깨끗한 화장실이 딸린 상가도 아니고, 주변에 상가들이 밀접한 곳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때마침 나온 매물도 있었고 몇 번의 방문 끝에 임대계약을 했다. 임대계약 후 본격적인 책방 공사와 오픈 준비로 정신 없을 때 차 한 대 지나갈 너비의 아스팔트 위에 노랑 고양이 한 마리가 천연덕스럽게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흰색 바탕에 노란색 무늬가 들어간 고양이. 이름 없는 고양이를 부를 때 으레 사용하던 그 ‘나비’였다. 천연덕스럽게 길 한복판에서 다리를 쭉 펴고 털 고르는 나비의 모습을 보니 ‘내가 자리는 잘 골랐구나’ 싶었다. 가게 자리를 보러 왔을 때는 보이지 않던 나비가 이곳으로 나를 이끈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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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처럼 살자 

 

책방 오픈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나비의 진짜 이름은 ‘나비’이고 길과 은신처를 오가며 6년 넘게 한곳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6년이라는 시간도 추정일 뿐 나비를 돌봐주시는 분도 나비의 정확한 나이와 나비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고 하셨고 그저 자신이 가게를 열기 전부터 머물던 고양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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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가까이 지켜본 나비의 모습은 어슬렁어슬렁 동네를 활보하며 발 닿는 곳에 몸을 누이는 모습이었다. 햇볕이 내리쬐면 그늘진 곳을 찾아가고, 매서운 바람이 불면 바람 피할 곳을 찾아갔다. 배가 고프면 사료가 놓인 곳을 찾아가 배를 채우고, 자기 영역에 낯선 고양이가 들어오면 멀리 쫓아버렸다.

 

이 동네에 나비만큼 덩치 큰 고양이도 없고 나비만큼 오래 산 고양이도 없는 듯 하였다. 동네 길냥이들은 슬금슬금 나비 눈치를 살피느라 조심히 다녔고, 자신이 먹던 밥을 내어 줄 만큼 나비 앞에선 꼼짝도 못했다. 그야말로 카리스마 대장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 구역의 주인은 자기라는 듯 늘 태평스럽고 여유까지 있어 보였다. 부러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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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에게는 카리스마 대장일지 몰라도 자기 이름을 살갑게 불러주는 사람에게는 ‘야옹’거리며 말도 붙이고, 어떨 땐 사람의 손길도 받아들일 줄 아는 순한 면도 보여주었다. 사람과 어울려 사는 법을 잘 아는 고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나비를 쫓아내거나 해코지하지 않았다. 길고양이 수명이 고작 2년이라는데 2년을 훌쩍 넘긴 나비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책방 문을 연 지 1년이 되어 가고 있다. 오픈 초기에는 홍보가 되지 않아 손님이 없겠거니 했다. 날이 더우면 더워서 손님이 없겠거니 했고, 날이 추우면 추워서 손님이 없겠거니 했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연말이면 연말이라서, 새해면 새해라서 손님이 없겠거니 했다. 나는 그렇게 손님 없는 책방에 대한 핑계를 찾고 있었다. 책을 팔아서 번 돈은 고스란히 책방 운영비로 나갔고 또다시 책을 들여놓는 일에 쓰였다. ‘넉넉지 않게 벌리는 돈으로 책방을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며 1년을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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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서 이제 겨우 1년을 버텼는데 나비는 6년이 넘는 시간을 이곳에서 버티고 있다. 바뀌는 날씨에 적응하고 든든한 은신처를 찾기까지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시련과 시행착오도 겪었을 것이다. 나비가 지금에야 한 덩치 하는 거묘지만 한때는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작은 새끼고양이였겠지. 어린 고양이가 자기보다 큰 길고양이들과 부딪히며 길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버텼을 것이다.

 

나는 나비가 이끈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나누며, 책방과 묘연을 맺은 길고양이들과 함께 우아하게 늙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이곳에서 버텨야 한다. 내 공간을 지킬 지혜가 있어야 하고 경험도 쌓아야 한다. 자신의 영역에서 꿋꿋이 버티고 있는 나비의 끈기를 배울 수 있다면 책방지기의 삶도 버틸 만하다.

 

 

CREDIT

글·사진 심선화 

에디터 김지연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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