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 봄냥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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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며, 봄냥이들
조회1,383회   댓글0건   작성일1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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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며,
봄냥이들


한낮엔 꽤 더운 것이 바야흐로 봄이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들이 피어나면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고양이들도 저마다의 모습으로 이 봄을 누릴 것이다. 나에게는 ‘봄’ 하면 떠오르는 고양이들이 있다. 그 녀석들을 만났던 곳은 지은 지 20년 된 아파트 단지였다. 뒤로는 산도 있고 단지 내에 산책로도 잘 되어 있어 숲 내음을 좋아하는 나는 이곳의 풍경이 퍽 마음에 들었다. 고양이는 이 풍경에 설탕한 스푼 같은 존재였다. 여름에 창문을 열면 정자 아래 할아버지 몇 분이 대화를 나누시고 고양이들은 그 옆에 늘어져서 낮잠을 자곤 했다. 길고양이들의 삶은 퍽퍽하지만 공기가 따뜻해지는 계절만큼은 나무 위를 캣타워 삼아 놀고 아무 데서나 늘어져 자는 ‘낭만고양이’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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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와 고양이

 

노란 개나리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이다. 개나리 아래에 누워 있는 ‘두키’가 예뻐서 사진을 찍다 보니 배도 불러오고 유두도 붉은 것이 임신한 것 같았다. 평소보다 훨씬 많이 먹길래 의심은 했었지만 아직 1살도 안 된 아이가 임신이라니 걱정이 앞섰다. 미처 TNR을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도 컸다. 얼마 후 두키는 자취를 감춰 나를 애태웠고 가을쯤 되어서야 새끼 다섯 마리를 데리고 다시 나타났다. 한미모 하는 두키와 닮은 예쁜 아이들이었다. 어미가 되어 새끼들을 지키는 두키는 이전과는 다르게 멋있어 보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개나리가 지천으로 피어날 때면 어김없이 개나리꽃 아래 누워있던 두키가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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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같은 첫사랑 고양이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고양이 ‘모모’를 나는 ‘첫사랑 고양이’라 부른다. 첫사랑과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지만 모모는 늘 나에게 무관심했다. 겨우내 밥을 챙겨주었는데도 매번 나를 깔보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어내심 속이 상했었다. 그런 모모가 처음으로 ‘야옹-’ 소리를 내며 꼬리를 높게 세우고 반겨줬던 날, 카메라를 가지고 나간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모모는 졸린 얼굴로 내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주었고 밥을 먹은 후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혼자 들떠 ‘드디어 모모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 생각하며 신이 났었다. 그게 모모와의 마지막 기억일 줄이야. 슬며시 찾아와 바삐 떠나버리는 봄처럼 모모는 자취를 감췄다. 다시 돌아올 거라 믿고 기다려봤지만 내가 이사하는 날까지 모모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모모를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프지만 마지막으로 건네준 인사만큼은 예쁘게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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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아래 포토존


앙상하던 나뭇가지에 초록색 잎들이 돋아난다. 고양이들은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사람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한다.나무 아래까지 사람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안심하는 것이다. 숨어 있느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나무 아래에 사료를 넣어주고 멀찌감치 떨어진다. 얼굴을 익힌 후에도 거리를 유지하니 내심 서운한 마음도 들지만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서 혹시 모를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사람을 믿지 말고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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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니까 함께 산책을


동네 터줏대감인 ‘밍이’와 ‘랑이’는 항상 붙어 다니는 사이좋은 친구다. 여러해 사계절을 겪어온 선배 고양이답게 여러 사람에게 애교를 부려 먹을 것을 얻어내곤 해서 누군가에겐 ‘나비’로, 누군가에겐 ‘껌둥이’로 불리곤 했다. 이 둘은 내가 만났던 고양이들 중 가장 똑똑하고 용감했다. 아파트 뒤 산책로를 걷다 보면 수풀 속에서 또는 나무 위에서 어느샌가 밍이와 랑이가 달려 나와 다리에 머리를 비비며 살가운 인사를 건네고는 따라오라는 듯 앞장서서 걷는다. 따라가지 않으면 멈춰 서서 기다려주기까지 한다. 무려 길고양이와의 산책이다. “나 오늘 고양이랑 산책했어!” 아무도 믿어주지 않지만 자랑도 하곤 했다. 짧은 산책이 끝나면 밥을 양껏 먹고 만족스럽다는 듯이 그루밍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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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에게도 봄이 올까요?


고작 3~5년 남짓. 녹록지 않은 생을 살다 가지만 봄 햇볕을 받으며 낮잠 자는 순간만큼은 평화롭다. 올봄에는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길고양이들이 햇볕을 따라 늘어져라 낮잠을 자더라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위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그게 고양이들에게는 진정한 봄일 테니까. 조금만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CREDIT 

글 사진 박지은
에디터 김지연

 

 

본 기사는 <매거진C>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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